여행 이야기 (Travel Stories)

[체코] 프라하 관광 명소 및 프라하 역사! (중요한 정보 위주로!)

민(Min),P.E. 2024. 5. 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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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민(Min) 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체코 프라하의 관광 명소 그리고 프라하가 가지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프라하는 체코 공화국의 수도로 인구 약 128만 명입니다. 블타바 강변에 위치한 프라하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풍부한 역사를 가진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프라하 성:9세기에 지어진 프라하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 중 하나이며 체코 왕들의 역사적인 거주지입니다. 성 구역에는 성 비투스 대성당, 황금 소로, القديس.조지 바실리카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 카를교: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는 14세기에 지어진 중세의 다리입니다. 다리에는 30개의 성상이 있으며 프라하에서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 구시가지 광장: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의 중심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광장입니다. 광장에는 천문시계, 티 church, 구시가지 홀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 광장의 구시청사의 천문시계는 그 역사적 의미가 깊습니다. 매 시마다 천문시계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 레닌 박물관:레닌 박물관은 구 소련의 독재자 레닌의 생애와 업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은 프라하 성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유대인 지구:유대인 지구는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공동체입니다. 이 지역에는 구 유대교 묘지, 스페인 회당, 유대교 박물관 등 다양한 유대교 유적지가 있습니다.

프라하는 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9세기에 프라하 성이 지어진 이후 프라하는 체코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프라하는 14세기에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16세기에 체코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프라하는 30년 전쟁(1618-1648년)과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년) 등 여러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항상 재건되어 아름다움과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여기에서 30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드리고자 합니다. 

30년 전쟁 (1618년 - 1648년)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유럽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입니다. 종교적 갈등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토적 갈등도 함께 작용하며 유럽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주요 원인 및 배경:

  • 종교적 갈등: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개신교 연합인 복음주의 연합과 황제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연합 간의 대립이 첨예했습니다.
  • 정치적 갈등: 신성 로마 황제의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제후들의 반발과 영토 분쟁 또한 전쟁 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외부 세력의 개입: 프랑스, 스웨덴 등 외부 강국들이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쟁 규모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전쟁 경과:

  • 보헤미아 전쟁 (1618-1621년): 신성 로마 황제 루돌프 2세의 죽음 이후 발생한 왕위 계승 문제를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개신교도인 프리드리히 5세가 보헤미아 왕으로 즉위하자, 가톨릭 황제 페르디난드 2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전쟁을 발동했습니다. 백산 전투에서 패배한 프리드리히 5세는 망명하고, 보헤미아는 다시 가톨릭 통치 아래 놓였습니다.
  • 팔츠-덴마크 전쟁 (1625-1629년): 덴마크가 신성 로마 제국의 공격에 맞서 개입한 전쟁입니다. 하지만 덴마크는 결국 패배하고, 황제는 제국의 권위를 강화했습니다.
  • 스웨덴 개입 (1630-1635년):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위협을 느낀 스웨덴이 개신교 연합을 지원하며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스웨덴은 일시적으로 독일 영토の大부분을 점령하며 전세를 뒤바꾸었지만, 결국 황제와 교섭을 통해 전쟁에서 물러났습니다.
  • 프랑스 개입 (1635-1648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강력한 세력을 견제하고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개신교 연합을 지원하며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프랑스의 개입으로 전쟁은 더욱 규모가 커졌고, 결국 양측은 지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종결했습니다.

결과 및 영향:

  •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30년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로 종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종교 자유를 보장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등 유럽 정치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유럽 사회의 변화: 30년 전쟁은 유럽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약 800만 명의 사람이 사망하고, 도시와 마을은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종교적,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었고, 유럽 사회는 오랫동안 불안정과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30년 전쟁은 단순한 종교 전쟁 이상의 의미를 지닌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전쟁은 유럽의 종교적, 정치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근대 국가 체제 형성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30년 전쟁의 참혹한 경험은 이후 유럽 국가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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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프라하 역사 주요 사건

  • 885년: 보르지보이 1세가 프라하 성을 건립
  • 1348년: 카를 4세가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하고 프라하를 제국의 수도로 지정
  • 1402년: 프라하 대학교 설립
  • 1618년: 30년 전쟁 발발
  • 1621년: 반란군이 백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프라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놓임
  •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독립, 프라하가 수도로 지정
  • 1939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
  • 1945년: 소련군이 프라하를 해방
  • 1968년: 바르샤바 조약군이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 1989년: 벨벳 혁명으로 공산주의 정권 붕괴
  •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 분리 독립, 프라하가 체코 공화국의 수도로 지정

위의 내용이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이만 포스팅을 마칩니다.